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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필독서_지혜롭게 사는 법/2.모든 해결책은 내안에 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2-3] 아버지의 빠른걸음. 이제야 좀 이해합니다.


내가 어렸을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로 기억합니다.
내가 살던곳은 매월 5일, 10일단위로 시골장이 열립니다.
부모님과 함께 장에 같이 갈때가 많았습니다.
집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이기에 때론 시내버스를 타고 갈때도 있었지만 걸어서 간 경우도 꽤 많았던걸로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지금 이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직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를 데리고 장보러 가시면 어머니의 발걸음은 느린반면 아버지의 발걸음은 빨랐습니다. 처음 출발은 같이 했지만 잠시후가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격은 한참 멀어지곤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그때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왜그리도 혼자서만 빨리 가시는지? 나야 어리긴 하지만 그나마 아버지의 발걸음을 따라 잡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어버지께서 어머니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같이 가면 좋았을텐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앞서가시면서 멀리 뒤떨어지면 어머니를 보시면서 빨리 서두리지 않고 뭐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거리를 좁히기 위해 별다른 반응 없이 속도를 높이십니다. 분명히 힘들어 보이는데도 그냥 쫓아 가셨습니다. 나의 어린생각에 그저 어머니만 불쌍해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야 나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것을 40여년이 지난후에 느끼게 되었다습니다.
주말에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자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평소에 아내는 어머니를 뵈러가자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내 뜻에 따라주어 항상 고마워 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다음날 하루 일정을 세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식사는 토스트에 우유한잔으로 간단히 하고 새학기를 맞은  아들의 참고서를 사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한후 점심을 어머니와 함께 하자고 했습니다. 일정상 시간이 빠듯했습니다. 아침식사는 나와 아내가 서두르면 되지만 일요일 서점 문 여는 시간이 10시였기 때문에 그 일정을 기준으로 순서대로 진행이 되어야 했습니다. 집에서 요양원까지 최소한 1시간 소요되기 때문에 점심식사 시간 전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10시30분에는 출발해야 했습니다. 그전에 서점에서 책사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는 것 또한 마쳐야 했습니다.
서점에서 책을 아내와 아들이 선택하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고 이내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도서관 주변에 주차한후 조금을 걸어 가는데 마음만 급했는지 나만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내가 뒤쫒아 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나는 어머니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좀 서둘러야 하는데 너무 느리게 쫒아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나만 계속 앞으로 갔습니다. 도서를 반납하고 같이 차로 돌아오는길에 갑자기 예전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고 먼저 앞서가시던 아버지의 행동을 내가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고 잘못되었다고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상황을 보고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지금까지 아버지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일부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의 일정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렀다고 이제야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행동이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아버지를 이해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 또한 이번계기를 통해 나의 행동을 좀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또 한가지 깨닫게 된것은 부모의 모든 하나하나의 행동이 그대로 자식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나의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조심해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 위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 돼서야 그 상황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당시에라도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물어보거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 이세상에 계시지 않은 아버지를 좀더 많이 이해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생각의 여유를 가져야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